物極必反

物極必反(老子-道德經)

道 아니면 돈? 자세히보기

설동석 도덕경(중화권 主流 해석소개

설동석 도덕경(1-2) 薛東釋 도덕경 1장(1-2) 설동석의 노자 도덕경 제 1장 해석. 중화 권의 主流 註釋을 한국 최초로 소개. 도덕경의 올바른 해석.

seoulsnowman 2016. 3. 13. 08:47

 

 

 

### 노자 도덕경을 대표하는 句節인,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무슨 뜻 일까요? ###
 
중국 형이상학 철학의 시초가 된 이 구절은 도대체 무슨 뜻 일까요?
(중화 권 老莊 사상의 主流 해석은 조금 후에 알려 드릴게요)
또는 그 뜻이 절벽에 매달려 있는 삶을 겨우겨우 살아내는 현대인에게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 것 일까요?

사실 우리에게는, 현실적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思考가; 그나마 작은 의미라도 갖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 북한 3대 세습 깡패 정권의 상습적인 돈 요구 공갈 협박보다 최소 백 만 배는 더 무섭고;
또 그 참혹한 결과를 바로 나타내는(긴 말을 이러 쿵 저러 쿵 하지 않음) 절대적 권위의 黑 魔王이 하나 있지요?
바로 전세계의 유일무이한 공통 종교인 돈을 말하는 겁니다. (^-^)

일체의 자비심이 없고 편리한 만큼 흉물스러운 돈의 공포에 떨면서 사는 우리 가장들이, 과연 노자의 도덕경을 보며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처세의 비밀이라도 가르쳐 주는 걸까요?

이런 최소한의 효용도 없다면, 가족 부양의 의무(돈 버는 의무)에 헉헉대며 짓눌려 있는 우리에게;
 도가도 비상도,명가명 비상명은 또 무슨 개수작(^-^)같은 헛소리 일까요?

 

 


물론, 노자 도덕경 공부가 우리에게는(특수 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40,50,60 대 가장을 지칭 함); 한가한 사치이자 얼 빠진 유희 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도교, 불교, 현대 물리학(양자물리학, 상대성 이론) 등에 평소 관심이 많은 분들은 [한 번 노자 도덕경을 공부할 가치가 있다] 라고 저는 생각 한답니다.

그렇지만, 어처구니 없는 자칭 도사들 내지 저 수 많은 대학 교수들의 어지러운 해석 논쟁에 우리가 귀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요.

 

 


더구나 대한민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참 된 노자 도덕경 해석서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 부양의 중대한 의무가 있는 우리 일반 불쌍한 가장들은, 그냥 현대 중화 권 노장 사상의 主流大勢 해석 정도를 참고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노장 사상의 전문가들이어야 할 국내 대학 교수들도,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정도 밖에 안 되는 엉터리 해석(번역); 전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지난 몇 십 년 동안, 아직도 뻔뻔하게 해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영웅본색 OST 분향미래일자 당년정에 이어 계속 유감스럽게도, 아직 제대로 된 노자 도덕경 한글 번역서가 단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한국에서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 가지고 어떻게 도덕경을 공부해야 될까요?

제 생각에는, 비판적으로 몇 권을 비교하고 분석하며;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수 밖에 없답니다.
우리나라 노장(老莊)사상 연구 수준이 그 정도 밖에는 안 되는 것을 어떡하겠습니까?
 

 


반면에, 공산주의 국가인 현재의 중국을 포함해 소위 중화 권 사람들은 지금까지 몇 천 년 동안;
사실, 그들의 유일한 토착 종교인 道敎의 사상과 가치관에 기반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답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것은 周知의 상식이고, 그나마 유교 사상이 전 국민을 짓눌렀던(지배했던) 시기는 전세계 문명사에서 조선 왕조 시대가 유일했고; 수천 년 동안 중국에서 유교는, 그냥 통치자 계급의 민중 착취 교리(수단)에 불과했었다는 것은 다들 아시죠?
 

 


말 나온 김에 잠깐 불교 얘기를 하자면, 우리 나라 불교라는 것도 실상은 일종의 격의 불교(格儀佛敎)로서;
중국인들이 노자 도덕경의 언어와 관념으로 재 해석한, 즉 산스크리트 語를 직접 한국어로 번역한 주체적인 한국 식 불교가 아닌; 중국 식 불교를 또 漢字 뒤범벅의 이상한 한국어로 받아들인 국적 불명의 이중 복제품에 불과한 거죠.

물론 일부 아름다운 한글의 불교 경전도 있지만(반야심경과 금강경이 전부 임), 대부분의 불교 경전들은 아직도 이상한 한자에 한글 조사를 갖다 붙인 괴기한 문장 구조를 이루고 있잖아요?

따라서 梵語에서 한글로 직역 된 주석을 보면 간단하게 이해 될 개념도, 오히려 불교 경전들을 읽거나 화상(和尙: 중 또는 스님이라는 뜻의 가치 중립적 표현)들의 강연을 들으면; 오히려 무슨 뜻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이와 똑 같은 일들이 노자 도덕경 주석(번역)에도 똑같이 발생하고 있어; 제가 이렇게 우리 나라 불교 경전의 실태를, 굳이 여기서 잠깐 언급하는 것 이랍니다.


조계종이라는 단어 자체가 벌써 얼마나 굴종적이고 중국 불교의 꼬봉(^_^) 임을 자처하는 의미인 지 한 번 검색해 보세요.

사실 구마라집((鳩摩羅什)(kumarajiva)이나 현장법사(玄奘法師. 서유기에 나오는 그 삼장법사), 노자 도덕경의 언어로 초기 불교 경전을 번역하지 않았다면; 그 당시 중국 민중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불교는 중국에 절대 전파될 수 없었죠.

 


그리고 이 건 원효대사의 직계 후손인 제가, 우리 나라 불교를 폄하 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불교의 기본 상식 이랍니다.
그래서 노자 도덕경을 읽다 보면, 내가 지금 불경을 읽고 있는 건지 아니면 도덕경을 읽고 있는 건지; 순간 순간 헷갈릴 수도 있답니다.

 


 
그럼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러니 중국인들의 삶을 몇 천 년 동안 지배하고 있는 노장 사상 연구(노자 도덕경 포함)의 폭과 깊이가; 우리 대한민국과 비교할 때, 그들이 얼마나 압도적인 차이로 앞서 있겠습니까?

비유를 들자면, 중국인들이 오랜  시간 우리 대한민국의 토착 종교인 東學(증산교)을 한국어로 연구해 왔었다고 한 번 가정해 보시 자고요; 몇 천 년을 연구한 들, 외국인이 개뿔(^-^)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ㅋㅋㅋ

게다가, 지금도 중화 권(중국, 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 그 외 전세계 화교 권)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종교가 뭡니까?
정답은 道敎 입니다.  그럼 그 도교의 최초 所依 경전은 뭘까요?
바로 노자 도덕경 이랍니다.

 

 


때문에 단지 우리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다고, 어설픈 현대 한국 식 한자 실력만 믿고; 자기 멋 대로 지 꼴리는 대로(^-^ 자기 마음대로) 노자 도덕경을 번역(해석)한 것은, 전혀 참된 註釋이 아니라는 말 입니다

또는 과거 중화 권 대학에서, 노장 사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따서 지금 대학교 교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사람들 대부분이 현재 중화 권의 主流 노장 사상 연구 결과물들은 외면한 채; 그렇게 반성과 성찰없이 엉터리 번역과 해석을 마구 해댄다면,여러분은 납득이 되시겠습니까?
정말 이래도 되는 것 입니까

 


이렇게 개나 소나, 노자 도덕경을 맘대로 유린하면서(대한민국을 우습게 보면서) 해석(번역)해대니; 나처럼 중국어나 좀 할 수 있으면 몰라도, 대다수 노자 도덕경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꼼짝없이 이 가짜 전달자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그럴 바에는 노자 도덕경 해석도; 그냥 본인의 주체적 논리로, 81장을 자기 나름대로 체득할 수 밖에 없다는 거예요.

 


 
어쨌든 이제 다시,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이 유명한 구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노자 도덕경 전체 81장을 아우르는 핵심 키 포인트가 제 1장 인데요.

그런데, 1장의 제일 첫 번 째 단락인 도가도 비상도,명가명 비상명은 과연 무슨 뜻 일까요?


그래도, 노자라고 나중에 추앙 받은 어떤 실존 인물이 그 당시 사람에게 알아 들으라고 한 말인 데; 그렇게 마치 신선의 언어처럼 알아 듣기 힘든 언어로, 노자 도덕경 5,000 字를 적어 놓았을까요?
 

 


사람들에게 도()를 이해는 시켜야 되는데, 말로 입 밖에 나오는 순간; 그 도는 영원하고 근본적인 常道의 참 뜻에서 바로 벗어나 버리기 때문에, 수많은 비유를 들어 노자는 도덕경 전 81장 내내 계속 반복해서 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형상화된 특정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지칭할 때 그 집단에서 사용하기로 약속된 이름이라는 것도; 그 명칭으로 불리어지는 순간 그 본질이 왜곡된다는 생각에서, 노자는 도덕경 전 81장 내내 계속 반복해서 명()의 허구성도 비유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노자가 주장하는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 구절에 대한 이해 없이는; 노자 도덕경 전체 81장을 절대 이해할 수 없으니, 우선 제1장을 계속 반복해서 연구하고 또 사유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잠깐 제 경험을 말씀 드리자면, 그러다 보면 언젠가 뭔가 좀 느껴지는 날이 반드시 오기는 합디다.
물론, 하루에 10분내지 20분 정도의 참선을 병행하면 더 좋겠죠……
 

 


우선 다음 사항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코미디 같은 현실이지만, 우리 대한민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註釋 과 번역)


# 모두 北京大學 李中華 석좌 교수의 해석에 기본 바탕을 두고, 거기에 제 생각과 현대 물리학 용어를 약간만 첨가한 것 입니다. #
A.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道可道 와 名可名 은 반드시 이렇게 해석 해야만 되고, 나머지 해석은 모두 틀린 것 입니다.

 


그리고 노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내용인 바, 그 주장이 맞는 지 또는 틀린 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 이지요(일단 제대로 된 해석이라도 알아야, 그 후 자기 나름대로 이해를 하던 말던; 뭘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道可道’ ‘名可名에서 앞의 道 와 名은 명사이고, 뒤의 道(말하다) 와 名(이름 부르다)은 동사 입니다!!!!! 따라서 [道라고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可道),진정한 근본 진리를 통섭하는 무형의 도(常道)는 아니다()] 라는 뜻이 되고; [이름()으로 명칭 지어 부를 수 있는 구체적 모습도(可名,) 사실 진정한 본질적 指稱(常名)은 아니다()] 라는 뜻 입니다.
 
그리고 제 1장에 나오는 常道’ ‘常名’ ‘常無’ ‘常有이렇게 常 字가 [道 名 無 有] 字 앞에 붙은 단어 네 개는, 도덕경 전 81장에 걸쳐서 계속 등장하는 바; 노자 도덕경의 핵심 포인트로서 ‘常道’는 만물 통섭의 절대진리, ‘常無’ 는 빅뱅 시작 전 우주 암흑에너지 상태, ‘常名’ 은 현상계 우주가 아닌 법성계 우주, 그리고 ‘常有’ 는 빅뱅의 특이점 또는 빅뱅 그 자체를 말하는 것 입니다.

 


그럼 여기서 잠시, 당시 주요 시대적 배경과 함께 노자 도덕경을 고찰 해 보겠습니다.
 李中華교수는 그의 도덕경 강의에서, 노자 도덕경의 시대적 배경과 함께 노자가 [道 名 無 有] 字 앞에 常 字를 붙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 했답니다.

즉 춘추 전국 시대 중에서, 周 나라 말기(춘추시대 말기)였던 百家爭鳴 당시 대세 主流 학파였던 法家 사상은 물론; 또 그 때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신흥 강자 儒家 사상 등에서 쓰던 [道 名 無 有] 字와, 자신이 말하는 [道 名 無 有] 字가 전혀 차원이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이해 그 앞에 常 字를 붙인 것 이라는 겁니다.

이 점을 우선 아는 게, 노자 도덕경 81장을 이해 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또 중요 하답니다.


따라서 여기서 常은 [항상, 자주] 등의 부사의 뜻이 아니고 뭔가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것을 강조하기 위한 형용사 랍니다.
 

 


그러면 이제, 유명 교수의 TV해설부터 토굴에 은거하고 있는 자칭 도사의 헛소리까지; 1945년 광복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을 어지럽혔던 그 수많은 각종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번역(해석) 중에서, 北京大學 李中華 석좌 교수 해석의 단 한 조각 편린이라도 담아낸 제대로 된노자 도덕경 주석(해석) 책 또는 강의, 강연은 단 한 개도 없었다는 제 말이 조금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겠습니까? ^_^

 


그리고 한가지 첨언한다면, 제가 누구처럼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되신다면; 그냥 이 포스트를 안 보면 그만입니다. 저도 이런 非직업적인 낙서장에서까지 논쟁을 할 시간적 여유는 없으니까요.
하여튼 어지러워요……
 
B.
노자가 도덕경에서 주장하는 常道 (그냥 줄여서 ) 는 다음 중요한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1). 노자가 無로 표현한 파동과 有로 표현한 입자 가 하나로 통섭되는 우주의 절대 진리. (: 상대성 이론과 양자 물리학이 하나로 통섭되는 우주의 최초 근본 상태 또는 그 근본 진리)



   2). 그 상도 (常道) 절대 진리의 작동 원리 (: 노자가 無로 표현 한 우주 암흑 물질 단계에서, 有로 표현 한 우주 빅뱅의 단계로 넘어 가는 우주 작동 원리) 또는 우주 만물의 모든 근본 진리가 인간 세상에서도 똑같이 발현되고 있다는 통찰

 

즉, 우주 만물은 바로 프랙탈 이론(Fractal theory)이 주장하는 그런 '같은 모양의 반복 패턴'으로 되어 있어, 석가모니 부처님도 수없이 강조한 것처럼; [부분과 전체는 그  구조와 작동 방식이 똑같다] 라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微細 단계부터 巨大 단계까지 사실  온 세상은 그 유사한 패턴이 무한 반복 확대 재 생산 되고 있다는 통찰.

프랙탈 이론의 사전적 정의는,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이고;
도교(주역)과 불교에서는 이 개념이 아~주 중요한 바, 흔히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부분이다] 라고 알듯 모를듯 애매하게 항상 강조 한 답니다. 그런데, 뭔가를 꼭 이렇게 애매하고 추상적으로 말해야;뭔가 진리가 숨어 있을 것 같고,  또 고상하게 보이고 그런 것은 아니 지 않습니까? (하여튼 마음에 안들어요...... ^_^)


   3). 1) 번과 2) 번의 진리와 그 작동 법칙이, 우리 태양계와 이 인간 세계에서도 똑같이 존재하고 또 그대로 작동되고 있으니; 우리가 마땅히 그 법칙 (常道, 어느 때는 노자 선생도 귀찮으시니까^_^, 그냥 道로 표현한 게 많음) 에 따라 삶을 영위 해야 된다는 當爲性.
 

근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또 이렇게 글이 길어 지네요……
(누구 닮아 가나? ㅋㅋㅋ ^_^)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하고,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 썰을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설동석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구절 註釋(해석) 및 번역 .

https://www.youtube.com/watch?v=4YZtQLl0pYw